서울의 동쪽 끝자락인 우리 동네에는 미장원이 많다. 그중 단골 미용실에 얼마 전 머리를 자르러 들렀더니 원장의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끙끙거리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숙제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무슨 숙제인가 보니 북한의 장점을 다섯 가지 써오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물었다. "숙제에 단점 쓰는 것도 있니?" 아이 대답은 "그건 없어요"였다. 아이는 "수업 시간에 북한 뉴스도 보고 북한을 상징하는 노래, 새, 꽃도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1인 독재 치하의 북한 주민 생활상도 함께 알려주어야 마땅하다. 북한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북한의 장점？？？ 써오라는 숙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장도 한탄했다. "혁신학교에 보냈더니 이래요. 선생님께 항의해야겠어요." 이어서 엄마가 덧붙인다. "얘, "북한의 장점은 없어요"라고 해라."
우리 동네엔 탈북한 지 7년 된 새터민이 있다. 외동딸과 단둘이 산다. 그녀는 북한의 가까운 친척에게 속아 탈북 직후 중국인에게 인신매매당해 수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살았다. 주변의 도움으로 딸과 함께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남한 생활에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 중 하나가 북을 추종하고 찬미하는 이들이다. "남한에 북한 좋아하는 사람이 오째 그리 많습니까? 그들이 북한에 한 번만 살아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싶습니다" 하며 기막혀한다. 올가을을 뜨겁게 달군 국정교과서 논쟁에 관해서도 교과서에서 실제 문제가 되는 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남북이 대치하는 엄중한 상황에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올바른 내용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때 386 운동권이었던 모 대학 인문대 교수를 며칠 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요즘 학교의 역사 교육이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고 탄식을 했다. 그의 친구가 고등학교 교사인데, 요즘 6·25？？쟁을 북침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다는 얘기를 전하더라는 것이다. 그 교수는 국정화 반대 성명서에 서명하라는 동료 교수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념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든지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보는 데서 오는 기우일 뿐이다. 대학교 교재나 학술 연구서에 대한 논쟁도 아니고 중·고등학교 교재다. 아직 국가관이나 사회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국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본다.
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텍사스주는 단일한 역사 교재로 고등학생을 가르치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상품은 사용해 보기 전에는 누구도 그 내용이나 품질을 평가할 수 없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현 단계에서 앞으로 나올 국정교과서가 친
일 또는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예단과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제 집필진을 구성하고 집필을 시작하는 단계다. 만일 무엇을 미화하고 있다면 그때 목소리를 높여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이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논쟁을 중지하고 차분히 새 교과서 시안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국？？？이냐 아니냐 하는 틀이 아니라 실제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