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숙명적…두려운 자여! 눈을 뜨고 통일을 준비하자!

 

 

*작가의 말 

 

우리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 부르며 자랐다. 통일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요, 역사적인 소명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통일은 부담되고, 두렵고, 귀찮은 주제가 되었다. 통일이라는 용어는 보수와 진보를 갈라놓는 경계선 역할을 했다.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귀찮은 문제아가 되었다. 

 

▲ 하정열 작가    ©브레이크뉴스

지금은, 구호만 요란할 뿐, 통일을 향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는 전략적인 접근보다는 북한의 급변사태나 꿈꾸며 요행수를 바라고 있다. 깜깜한 어둠속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통일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여명이 다가오는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줄기는 둘이지만 뿌리가 하나면, 언젠가는 합쳐지게 되어 있다. 두 차례의 삼국통일과 독일의 통일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나는 통일을 꿈꾸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력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지만, 눈은 통일의 열쇠를 찾고 있다. 심장은 약해지지만, 몸은 통일의 문을 열어보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학을 공부하고, 통일을 주제로 많은 전문서적과 논문 및 시를 썼다. 통일기금을 모으고, 강의하고, 세미나를 주최하는 등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못해 우리 민족과 자랑스러운 조국에 늘 부족함과 죄스러움을 느낀？？. 

 

이 소설이 이런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이 통일을 열망하는 독자들에게 힘을 주고, 통일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평화통일의 해답을 찾는 독자는 이 소설에서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의 미래에서 통일을 설계하는 독자에게는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될 것이다.

 

용기 있는 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두려운 자여! 통일의 열차가 다가올 때 기회를 휘어잡을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뜨고, 미래를 준비하자.                                                            <장편 연재소설>통일아리랑-1 

 

평양의 10월 하늘은 푸르고 곱다. 통일 10주년을 맞는 대동강 물은 오케스트라 선율에 따라 춤추며 흐른다. 강 ？？？자에게 10월 3일은 감회가 새롭다. 그는 통일의 주역 역할을 한 죽마고우 친구들과 가족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자축행사를 갖기로 했다.   

“우리가 평양으로 옮긴 것은 잘한 일이야.”    

강 기자는 늘푸른 대동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그동안 한 일 중에서 제일 잘 한 일 중 하나에요.”   

손님맞이 음식준비를 다 마친 그의 아내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강 기자는 그동안 주름살이 늘어난 아내 조영숙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칠어진 손을 꼭 잡아주었다. 결혼생활 40여 년 동안 많은 고생을 시켰다는 미안함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정읍 촌놈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다니던 그는 조영숙을 서클 선후배로 만났다. 그녀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다니며 인권운동 등에 관심을 가진 정의감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맑고 큰 눈을 가진 예쁜 그녀를 보고 그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MT 등 모든 모임에서 그녀의 곁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그는 흑기사를 자처했다.   

“애야, 혹시 도울 일이 없냐?”    

어머니 황선영의 목소리에 그들은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며칠 전부터 서성이던 어머님이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곱게 차려 입으셨다. 아직 1시간이 남았지만 벌써 대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신다. 오늘 전 가족이 참여하는 큰 모임도 친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황선영의 배려로 이루어졌다. 

 “예, 이제 마무리 되었어요.”    “할머니, 저희도 다 준비 되었어요.”    

정원 잔디밭에서 식탁보를 깔고 그릴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는 강민국 부부가 함께 대답했다. 오늘 따라 잔디밭을 더욱 신나게 뛰어노는 손자와 손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뭉게구름 되어 집안을 흘렀다.

 

강 기자의 집은 평양 외곽의 대동강 가에 있다. 대지 100평에 건평 60평이 되는 2층 벽돌집이다. 통일 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척들이 사는 평양으로 옮기고 싶어 하시는 어머님과 통일의 현장을 보다 밀도 깊게 취재하고 싶은 강 기자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일하고 싶은 부인 조영숙이 의기투합하여 산 집이다. 여기에는 평양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어 하는 큰아들 강민국 부부와 평양 미국영사관에서 근무하게 된 딸 강선화 부부도 함께 힘을 보탰다. 어머니의 옛 고향 집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정부정책으로 어려워진 후, 서울의 아파트와 모든 재산을 팔아 평양 외곽의 대동강 가에 위치한 이 집을 구입한 것이었다.    

이 집에는 친손자 둘과 외손자 하나를 포함해 4대 10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서울에 있었으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집은 거실에 6개의 방이 딸려 있어 방 하나는 어머니 황선영이, 그 옆방은 강 기자 부부가, 방 두 개는 큰 아들네가, 방 하나는 딸 부부와 2살 난 손녀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방 하나는 먼 길에서 손님이 오거나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하는 막내아들 강한석이 외박을 나오면 자고 갈 수 있도록 비워두고 있었다.

 

오후 5시 정각이 되자 군대생활에서 시간 개념이 몸에 밴 박겨레 부부가 온 가족과 함께 제일 먼저 도착했다.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박겨레 장군이 어머님께 다가가 반갑게 인사드렸다. 

 “아이구! 우리 박 장군과 애기 엄마도 건강해 보이네.”   “오늘 같이 좋은 날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겨레 장군 가족이 정답게 어머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아니야, 당연하지. 오늘은 특별하게 축하할 날이잖아!”   “어머님이 건강하셔서, 우리 모두가 즐겁습니다.”   박겨레가 황선영에게 다가가 어깨를 살갑게 주물렀다.   “야! 어서와! 우리 함께 놀자.”   “그래, 잘 있었냐?”   

두 달 여 만에 만난 아이들이 벌써 서로 손을 잡고 잔디밭을 뛰어 다녔다.  

이대한, 황만주, 그리고 김상웅이 뒤이어 가족과 함께 도착하니 마당이 꽉 찬듯했다. 오전에 능라도 체육관에？？는 통일 1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정읍 오총사는 함께 초청되어 감회 깊은 행사를 즐겼다. 이제 산뜻한 복장으로 온 가족이 다시 만나니 대동강 가에 핀 우정은 내장산 단풍처럼 설레게 물들었다.  

“무얼 그리 잔뜩 싸 가지고 왔어?”    

어머니는 김상웅 회장 가족에게 감사하며 말을 건넸다.   

“어머님 조금 밖에 준비를 못했어요. 저희 집에서 모셨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김상웅 회장 가족은 몹시 미안해하며 황선영의 손을 꼭 잡았다.   

해마다 통일기념일이 되면, 강 기자 집에 친구들이 모여 축제를 열어왔다. 김상웅 회장이 친구들 중 마지막으로 평양으로 이사 온 이후 시작했다. 벌써 여섯 번째 정기 모임이었다. 오늘은 통일 10주년과 강 기자의 70회 생일이 겹쳐 손자들을 포함하여 온 가족들이 다 모인 가든파티가 된 것이었다.  

강 기자의 형편은 친구들 중 제일 빠듯했다. 그러나 중학교 다닐 때부터 대장 노릇을 해온 탓도 있지만, 그 때부터도 항상 강 기자 집에 모여 어머님의 묵인 아래 모사를 해온 것이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일 미안해 생각하는 것은 사업을 크게 하며 능라도에 200여 평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가진 김회장과 그 가족이었다. 그래서 모임 때만 되면 고기와 음료수를 먼저 보내왔다.   

“아! 맛있는 냄새!”    

항상 식욕이 제일 좋은 이대한이 장관까지 역임한 외교관 출신답지 않게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그래 평양으로 오길 잘 했지?”   

강 기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이대한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렴 잘 하고말고.”   

밥보다 술을 먼저 챙기는 황만주가 벌써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에서 40여 년을 근무하고 국정원 차장까지 한 국정원 맨이었다.    

“그 때 내가 대한이 설득하느라 힘 좀 썼었지.”   

“대한이 가족은 내가 설득했잖아.”    

김상웅이 거들었다.   

“맞아! 나 혼자 서울에 남았으면 오늘은 너희들 그리워서 북쪽 바라보느라 목이 석자쯤은 빠졌을 거야.”  

이대한이 호탕하게 말을 하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10월의 석양에 물든 대동강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가족들은 불판 가까이 모여 서로 오순도순 노닥거리며 삼겹살과 소시지를 구웠다. 며느리들은 식탁을 정리하고 손자와 손녀 녀석들은 모처럼 만난 것이 그렇게 좋은지 깔깔대며 손에 손을 잡고 뛰어 놀았다. 이들 오총사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독일의 베를린에 모여 독일 통일을 연구하며, 가끔 소시지파티를 열곤 했었다. 그 후로 이들의 모임에는 항상 소시지구이가 빠지면 안 되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벌써 물들어 가는 잔디밭을 쓰다듬는 노을빛은 모두의 마음을 열고, 솔바람은 모닥불의 불꽃을 일으켰다.  

“자, 이제 시작해도 될 것 같아요.”   

주인마님의 제의에 모두가 접시를 챙겨들고 기호에 따라 음식을 담고, 평소처럼 편하게 그룹지어 자리를 잡았다.   

“소시지는 독일 소시지, 술은 들쭉주가 최고야.”    

벌써 맥주에서 들쭉주로 방향을 잡은 황만주가 ‘크!’ 소리를 내며 품평을 했다.  

강 기자가 모두 ？？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오늘은 우리 조국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통일된 지 1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평화통일의 역사적인 여정을 손을 잡고 함께 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큰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이 모두 함께 하여 오늘의 이 축하모임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를 모두 담아 제가 축배를 제의하겠습니다.”    

강 기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높이 들었다.    

“자! 평화통일된 우리 조국 한반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강 기자가 평소처럼 제일 먼저 축배를 선창했다.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모두가 잔을 높이 들고 목청이 터져라 축배를 했다. 손자들도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물 잔을 높이 들고 함께 소리치는 모습이 무척 귀엽기만 했다. 

 

“요즈음 평양시민들의 옷차림이 너무 좋아졌어요. 이게 다 김 회장 덕분 아니오?”  

옷에 대한 빼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이대한이 김상웅을 바라보며 말？？다.

 “아! 내 덕이 아니고, 다 강민국 사장과 김지혜 사장이 노력한 덕분이지.”

 김 회장이 발을 빼며 평양과 황금평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강 기자 아들 내외를 치켜세웠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버님의 노력이 제일 크시지요.”  

강민국이 일어나 존경의 눈빛으로 김 회장을 바라보며 서슴없이 말했다. 오 총사의 자녀들은 누구나 오 총사를 향해 아버님으로 호칭했다.   

북한주민들은 통일 이듬해부터 ‘쌀밥에 고깃국’을 먹기 시작했다. 김일성왕국 3대 80여 년의 숙원이 통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통일 3년차부터 입는 문제를 남한주민과 같은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남남북녀’라 했던가! 곱게 차려 입은 북한여성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졌다. 바로 그 문제를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잔디밭 한 가운데 모닥불은 무르익은 대화에 온몸을 태우고 평양의 가을밤은 모닥불에 홍조가 되어 대동강 물결을 따라 춤추었다. 

 “강 부위는 오늘도 못 나왔나 봐요.”    

강한석 부위를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예뻐하던 신소녀 대표가 섭섭한 듯 한마디 한다.  

“오빠들! 오늘 방송에서 보니 중국과의 국경 일대가 무척 소란스러운가 봐요. 특별한 해법이 없을까요?”  

오빠들을 따라 평양으로 올라와 평양역 근처에서 정읍식당을 운영하는 신소녀 대표가 강 부위가 몹시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계속> hjy20813@naver.com 

 

*필자/하정열.시인. 화가. 예비역 소장. 작가.